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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금.ssul

책장 사이로 보이는 당신과

레벨 ㅎㅍㄹ초ㅠ
3시간 33분전 406 0 0

본문

1부
대학 중앙도서관 최상층.
고문헌실의 문이 스르륵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야간 개방 종료 10분 전.
나는 아직 책장 사이에 서 있었다.
윤하린.
박사과정 3년차.
논문 마감이 코앞이라 매일 새벽까지 도서관을 지키는 나였다.
오늘도 그랬다.
고문헌실 입구에 붙은 ‘출입 금지’ 팻말을 무시하고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섰다.
이곳은 특별했다.
19세기 유럽에서 건너온 낡은 서적들이 쌓인 공간.
먼지 쌓인 공기가 코를 간질였고,
종이 냄새가 피부를 스쳤다.
나는 여기서 필요한 자료를 찾으려 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그건 핑계였다.
이서진 사서.
밤 근무만 맡는 그 남자.
28살, 말수가 적고 손끝이 예민한 사람.
첫 번째 만남부터
그의 시선이 나를 따라오는 걸 느꼈다.
책을 건네줄 때마다
손가락이 살짝 스치고,
눈이 마주칠 때마다
그가 고개를 살짝 기울이는 미소.
나도 그랬다.
처음엔 우연이라고 치부했다.
하지만 매일 밤,
그가 내 자리를 지나칠 때마다
심장이 조금 더 빨리 뛰었다.
책 추천을 해줄 때
그의 목소리가 낮게 울릴 때마다
나는 일부러 질문을 더 했다.
‘이 책 다음으로 뭐가 좋을까요?’
그럴 때마다 그는
조금 더 오래 머물렀다.
오늘도 그랬다.
종료 안내 방송이 울린 후,
나는 일부러 자리를 늦게 정리했다.
그가 다가올까 봐.
하지만 그는 없었다.
그래서 용기를 내
금지 구역으로 들어섰다.
책장 사이를 헤매는 내 발소리가
작게 메아리쳤다.
손끝으로 선반을 더듬으며
‘아, 여기 있네’ 하고 중얼거렸다.
낡은 가죽 표지의 책 한 권.
논문에 딱 맞는 자료.
그 순간,
뒤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여기선 안 돼요.”
낮고 조용한 목소리.
이서진이었다.
나는 흠칫 돌아봤다.
그의 실루엣이
희미한 조명 아래 서 있었다.
검은 셔츠 소매가 걷어 올려진 팔.
손에 쥔 열쇠 뭉치가
살짝 흔들렸다.
“죄송해요.
논문 때문에… 정말 급해서.”
나는 급히 변명했다.
하지만 그의 눈빛이
평소와 달랐다.
차갑지 않았다.
오히려
부드럽게,
나를 감싸 안는 듯했다.
그는 한 걸음 다가왔다.
책장 사이로 그의 체취가 스며들었다.
커피와 오래된 종이 냄새.
그 혼합물이
내 코끝을 간질였다.
“알아요.
하린 씨 논문, 제가 추천한 책들 다 빌렸잖아요.”
그가 말했다.
그 목소리에
숨결이 섞여 있었다.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내가 매일 그를 기다린다는 걸.
내가 책을 빌릴 때마다
그의 손을 기다린다는 걸.
심장이 쿵쾅거렸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이
직접 나를 꿰뚫었다.
‘나도 기다렸어’라는 말 없이.
“퇴실 시간 지났어요.
문 잠겼을 거예요.”
그가 창밖을 힐끗 봤다.
도서관 전체가 어두워진 게 보였다.
관리실 불도 꺼져 있었다.
“그럼… 어떻게 해요?”
나는 일부러 목소리를 떨게 했다.
그의 반응을 보고 싶었다.
그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다 미소 지었다.
그 미소가
책장 사이를 가득 채웠다.
“숨겨줄게요.
조용히만 하시면.”
그의 손이
내 팔을 스쳤다.
우연이 아니었다.
그 손끝이
살짝 머물렀다.
내 피부가
그 열기에 반응했다.
우리는 더 깊숙이 들어갔다.
고문헌실 가장 안쪽,
책장이 빽빽이 들어선 구석.
여기선 소리도 새어나가지 않았다.
그가 나를 이끌었다.
그 손이
내 손등을 잡았다.
아니, 스쳤다.
하지만 그 스침이
이미 모든 걸 말하고 있었다.
“여기서 자료 찾으세요.
제가 지켜볼게요.”
그가 속삭였다.
그의 숨이
내 귀를 스쳤다.
뜨거웠다.
커피 냄새가
더 짙어졌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책을 꺼내려 손을 뻗었다.
그 순간,
그의 손이 겹쳤다.
책 등 위로.
손등이 맞닿았다.
둘 다 멈췄다.
시간이 멈춘 듯했다.
그의 손등이
내 손등 위에 얹혔다.
무겁지 않았다.
오히려
가볍게,
그러나 확실하게
나를 누르는 느낌.
“이 책… 제가 추천한 거예요.”
그가 말했다.
목소리가 더 낮아졌다.
그의 손가락이
살짝 움직였다.
내 손가락 사이로 파고들었다.
책을 잡는 척.
하지만 그건
이미 다른 의미였다.
나는 숨을 삼켰다.
그의 체온이
손을 타고 올라왔다.
팔을 타고,
어깨를 타고,
가슴으로 스며들었다.
“서진 씨… 고마워요.”
나는 속삭였다.
그의 이름을 처음 불렀다.
평소엔 ‘사서님’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지금은
이름이 필요했다.
그 이름이
책장 사이를 채웠다.
그는 대답 대신
손을 더 깊이 움직였다.
책을 꺼내는 척.
그러나 그의 엄지가
내 손목 안쪽을 스쳤다.
맥박이 뛰는 곳.
그가 느꼈다.
내가 그를 원한다는 걸.
공기가 무거워졌다.
종이 냄새와
그의 냄새가
뒤섞였다.
숨소리가
서로의 피부를 핥았다.
그가 고개를 숙였다.
이마가 거의 닿을 거리.
그의 눈이
내 입술을 스쳤다.
시선으로.
“여긴… 소리도 새어나가지 않아요.”
그가 속삭였다.
그리고
내 손목을 잡았다.
부드럽게,
그러나 놓지 않을 듯이.
그 손길이
모든 걸 약속했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던 관심이
이제 책장 사이에서
살아 숨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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