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주인 찾는 묘지
asdfasf3333
2025-01-27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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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6.25가 끝나고 휴전인 상황에서 문경 점촌은 이름 없는 묘지가 굉장히 많았어. 이유인즉슨, 문경이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을 끼고 있고 부산으로 산맥을 타고 갈 수 있는 유일한 요충지였으며 문경새재 근처 산세가 험하여 숨기 좋고, 남한의 중심(지도 보면 남한의 거의 정중앙) 거점이었으니까. 영덕과 충주 밑에 있어서 많은 학도병들도 이곳 출신이 많았고, 잦은 전투로 인해 이름 모르는 국군장병들이 장도 치르지 못하고 묻혔고... 와중엔 빨치산 시체들도 더러 묻혔는데, 증조할머니가 남한군과 같이 묻으면 큰일 난다고 난리 피운 적도 있다고 하셨다고 해.
그게 묻고 묻다 보니 굉장히 큰 언덕이 되었는데 잡귀가 들러붙을까 봐 증조할머니께서 장승도 직접 의탁해서 세워두시고 스님들하고 풀도 치우고 했었어. 하루는 증조할머님이 당시 점촌으로 시집간 젊은 아가씨였던 우리 할머니를 뵈러 가셨다고 해.
가셔서 살림도 돕고 할아버지셨던 분도 뵙고 (증조할머니는 할아버지를 조 서방이라고 불렀음) 다시 운암사로 돌아오는데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증조할머니를 배웅하러 마을 어귀까지 나선 모양이야. 그런데 거기서 한 무리의 사람들을 만나게 돼. 농가에 피해 주는 멧돼지 사냥을 나섰다가 돌아오는 사내들과 맞닥뜨리게 된 거야. 당시 문경은 항상 석탄광이 개발돼서 좀 풍요로워 지던 시절이었고 대다수의 농가를 제외한 사내들은 탄광에서 일을 하고 돈도 잘 벌어오던 그런 시절이었지. 그래서인지 농사를 짓는 사람들과 빈부격차가 나게 돼.
좁은 동네에서 그런 게 있을까 하겠냐마는, 당시 농가 사람들은 되게 못 살았어. 보릿고개 즈음임에도 탄광에서 일을 하던 사람들은 쌀밥에 고기도 잘 먹었지만 앞서 말했다 싶이 산세가 험한 문경지역은 야생동물도 굉장히 많아. 멧돼지 등 따위 때문에 농가들은 농사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고, 그 해는 가뭄도 심해서 사냥이라도 다닐 정도였다는 거지.
말로만 듣던 풀뿌리죽으로 연명하기도 하고, 항간에는 쥐를 잡아 고기를 구워 먹을 정도였다고 하니, 보릿고개 즈음이라는 게 상상이 갔어. 결국 탄광촌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합심해서 쌀 몇 가마니를 거들어 보태주기도 했지만 농가 쪽 사람들은 아니꼬움만 더 커졌다고 해.
(탄광은 80년대쯤인가? 폐쇄됐다고 하는데 연도는 자세히 모르겠음)
당시 할아버지는 탄광에서 일을 하던 청년이었고, 멧돼지 사냥을 나섰다 돌아온 농가 쪽 사내들과는 사이가 매우 좋지 못했어. 사내들은 거나하게 취해있어서 시비가 붙었고 졸지에 할아버지와 주먹싸움까지 가게 됐어. 할머니와 증조할머니가 말려도 소용이 없어서 증조할머니는 할머니를 시켜 절에 가서 스님들을 불러오라고 하게 돼.
할머니가 스님들을 대동해서 오고 나니 싸움은 그쳐있었고 할아버지랑 다투던 사내들이 혼이 쏙 나가서 벌벌 떨고 웅크리고 있더래. 스님들이 농가 사람들을 추슬러 보내고 할머니가 증조할머니께 물어보니까, 조 서방이 흠신 두들겨 맞고 쓰러져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탕-!하고 총소리가 나서 모두 숨죽여 엎드렸대.
그러고 나서 북한 군복을 입은 사내가 오더니 총을 겨누고, 먹을 것을 달라고 하더래. 귀신 이런 건 아니었고 진짜 북한군. 할아버지 겨우 일어나서는 증조할머니께 챙겨드리려던 옥수수랑 감자 이런 것들을 줘버렸고, 사내들도 멧돼지 고기를 줬다고 해. 주고 나니 북한군 한 명이 "뭐 하네 걍 다 쏴 죽이고 가디안코" 라는 식으로 말을 했더래. 그때 증조할머니가 나서서 여긴 북한군도 많이 묻혀있는 곳이라고, 나라와 당신들의 수령을 위해 목숨 바친 장병들 앞에서 이러면 안 된다고, 묻어준 것도 우리라고 했더니 "연어간나 아니네?"라는 말을 남기고 갔다고 해. 나중에 알고 보니 간첩을 연어간나 라고 하는 모양.
그 일이 있고 나서 국군이 대대적인 수색을 하게 돼. 땅굴 같은 곳으로 침투했나 싶어서 급기야 묘지를 파헤치게 됐어. 땅굴 같은 것은 결국 발견되지 않았고, 북한 군복을 입은 유해들은 한데 모아 불질러버리고 남한 국군들만 다시 묻게 됐어. 북한군을 파헤친 구덩이들만 덩그러니 메꿔지지도 않고 남게 됐는데 주인 잃은 묘지들이었지. 그걸 그냥 묻었어야 했는데...
가뭄은 심해졌고 더욱 먹고살기 힘든 농가 쪽 사람들은 북한군을 꺼낸 묘지에다가 죽대창 같은 걸 만들거나 드럼통 같은 것을 설치해서 멧돼지 덫을 놓아버렸어. 마을 어귀여서 농가로 접어드는 멧돼지들이 많이 출몰했었다니까.. 그 후로 꼭 하루건너 하루면 사람이 죽어나갔는데, 그 모습이 해괴하고 기괴했다고 해. 증조할머니께서는 굿판을 벌이고 위령제를 자주 할 정도로 불려나가셨다고 하는데, 사정을 알고 보니 덫으로 개조해 놓은 묘지마다 사람이 한 명씩 죽어서 발견됐대.
어떤 사람은 자기가 묘지에 설치한 드럼통에 실수로 빠져버렸는데 멧돼지가 잡식성이다 보니 그 사람도 잡아먹으려고 자기도 묘지 안으로 뛰어들어선 뜯어먹었다는 거야. 하체는 어디 가고 없고 벌써 상체만 남아 멧돼지에게 뜯기고 있었다고 해. 증조할머니는 직접 보셨다고;;; 또 어떤 사람은 묘지 안에서 아직 죽지 않ㅇ고 손 뻗어서 땅 짚고 올라오면 되는데, 나오지도 못하고 정신이 나가서 발발 떨고 있더라는 거야.
물어보니 간밤에 덫에서 끼에 끼에 하는 새끼 돼지 소리? 가 들려서 가보니 돼지는 없고 웬 시꺼멓고 동그란 게 파헤쳐 진 묘지 안에 있더래. 그래서 잔뜩 놀라가지고 호롱불을 비춰보니 여자인데 북한 장교 모를 쓰고 묘지를 맨손으로 파고 있었다는 거야. 그러다가 고개를 획 돌리더니 윗니 아래쪽은 포에 반파가 되었는지 너덜너덜하고 눈동자도 어딜 보는지 모르겠었대. 굉장히 높은 톤의 목소리로 자신이 누구를 찾고 있는데 도와달라고 그냥 가버리면 총 쏴 죽여버리겠다고 해서 나오지도 못하고 정신없이 땅을 파다가 보니 여자가 없어졌다는 거야. 손을 보니까 거짓 같지는 않았다더라.
어떤 미쳐버린 남자는 밤만 되면 묏자리 안에서 조용조용하게 사삭-사삭-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다고..호롱불을 비춰보면 소리를 낸 누군가 자신을 탁 치고는 도망가는데, 검은 사람 형체 같은 게 재빠르게 사라지고 그랬대..
날이 지나고 꼭 덫을 설치한 곳에는 멧돼지 대신에 사람이 죽어있었고 빈 묘지에는 누가 미쳐서 들어가 있고.. 이런 일이 계속 일어나니까 묘지가 자기 주인 찾는 것 같다고 귀신 들기 전에 제를 지내야 한대서 큰 굿판을 벌이고 패여진 묘지에서는 소나무 묘목들을 심고 금줄을 치고 향을 피웠다고 해. 그리고 나선 그 뒤론 별일 없었다고 하는데, 사실 증조할머님은 영을 보지만 사람들에겐 말을 잘 안 하는 편이래. 그 후로도 풀을 치러가면 솔잎이 불긋불긋하고 해가 쨍쨍한 대낮에도 그곳만 음산하고 검은 사람 형체 같은 것들이 군모를 쓰고 조용조용히 나무 뒤에 숨어서 풀치는 것을 지켜보았다고 해.
최근에는 그 생명력 강한 소나무들도 다 죽어서 전부 들어내고 잔디를 심어도 파릇파릇 해지지 않아서 방치 중이야. (지금도 문경시 점촌에는 시외버스터미널 바로 옆에 장례식장이 있고, 건너편에 문경 제일병원과 정신병원이 있어.)
그게 묻고 묻다 보니 굉장히 큰 언덕이 되었는데 잡귀가 들러붙을까 봐 증조할머니께서 장승도 직접 의탁해서 세워두시고 스님들하고 풀도 치우고 했었어. 하루는 증조할머님이 당시 점촌으로 시집간 젊은 아가씨였던 우리 할머니를 뵈러 가셨다고 해.
가셔서 살림도 돕고 할아버지셨던 분도 뵙고 (증조할머니는 할아버지를 조 서방이라고 불렀음) 다시 운암사로 돌아오는데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증조할머니를 배웅하러 마을 어귀까지 나선 모양이야. 그런데 거기서 한 무리의 사람들을 만나게 돼. 농가에 피해 주는 멧돼지 사냥을 나섰다가 돌아오는 사내들과 맞닥뜨리게 된 거야. 당시 문경은 항상 석탄광이 개발돼서 좀 풍요로워 지던 시절이었고 대다수의 농가를 제외한 사내들은 탄광에서 일을 하고 돈도 잘 벌어오던 그런 시절이었지. 그래서인지 농사를 짓는 사람들과 빈부격차가 나게 돼.
좁은 동네에서 그런 게 있을까 하겠냐마는, 당시 농가 사람들은 되게 못 살았어. 보릿고개 즈음임에도 탄광에서 일을 하던 사람들은 쌀밥에 고기도 잘 먹었지만 앞서 말했다 싶이 산세가 험한 문경지역은 야생동물도 굉장히 많아. 멧돼지 등 따위 때문에 농가들은 농사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고, 그 해는 가뭄도 심해서 사냥이라도 다닐 정도였다는 거지.
말로만 듣던 풀뿌리죽으로 연명하기도 하고, 항간에는 쥐를 잡아 고기를 구워 먹을 정도였다고 하니, 보릿고개 즈음이라는 게 상상이 갔어. 결국 탄광촌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합심해서 쌀 몇 가마니를 거들어 보태주기도 했지만 농가 쪽 사람들은 아니꼬움만 더 커졌다고 해.
(탄광은 80년대쯤인가? 폐쇄됐다고 하는데 연도는 자세히 모르겠음)
당시 할아버지는 탄광에서 일을 하던 청년이었고, 멧돼지 사냥을 나섰다 돌아온 농가 쪽 사내들과는 사이가 매우 좋지 못했어. 사내들은 거나하게 취해있어서 시비가 붙었고 졸지에 할아버지와 주먹싸움까지 가게 됐어. 할머니와 증조할머니가 말려도 소용이 없어서 증조할머니는 할머니를 시켜 절에 가서 스님들을 불러오라고 하게 돼.
할머니가 스님들을 대동해서 오고 나니 싸움은 그쳐있었고 할아버지랑 다투던 사내들이 혼이 쏙 나가서 벌벌 떨고 웅크리고 있더래. 스님들이 농가 사람들을 추슬러 보내고 할머니가 증조할머니께 물어보니까, 조 서방이 흠신 두들겨 맞고 쓰러져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탕-!하고 총소리가 나서 모두 숨죽여 엎드렸대.
그러고 나서 북한 군복을 입은 사내가 오더니 총을 겨누고, 먹을 것을 달라고 하더래. 귀신 이런 건 아니었고 진짜 북한군. 할아버지 겨우 일어나서는 증조할머니께 챙겨드리려던 옥수수랑 감자 이런 것들을 줘버렸고, 사내들도 멧돼지 고기를 줬다고 해. 주고 나니 북한군 한 명이 "뭐 하네 걍 다 쏴 죽이고 가디안코" 라는 식으로 말을 했더래. 그때 증조할머니가 나서서 여긴 북한군도 많이 묻혀있는 곳이라고, 나라와 당신들의 수령을 위해 목숨 바친 장병들 앞에서 이러면 안 된다고, 묻어준 것도 우리라고 했더니 "연어간나 아니네?"라는 말을 남기고 갔다고 해. 나중에 알고 보니 간첩을 연어간나 라고 하는 모양.
그 일이 있고 나서 국군이 대대적인 수색을 하게 돼. 땅굴 같은 곳으로 침투했나 싶어서 급기야 묘지를 파헤치게 됐어. 땅굴 같은 것은 결국 발견되지 않았고, 북한 군복을 입은 유해들은 한데 모아 불질러버리고 남한 국군들만 다시 묻게 됐어. 북한군을 파헤친 구덩이들만 덩그러니 메꿔지지도 않고 남게 됐는데 주인 잃은 묘지들이었지. 그걸 그냥 묻었어야 했는데...
가뭄은 심해졌고 더욱 먹고살기 힘든 농가 쪽 사람들은 북한군을 꺼낸 묘지에다가 죽대창 같은 걸 만들거나 드럼통 같은 것을 설치해서 멧돼지 덫을 놓아버렸어. 마을 어귀여서 농가로 접어드는 멧돼지들이 많이 출몰했었다니까.. 그 후로 꼭 하루건너 하루면 사람이 죽어나갔는데, 그 모습이 해괴하고 기괴했다고 해. 증조할머니께서는 굿판을 벌이고 위령제를 자주 할 정도로 불려나가셨다고 하는데, 사정을 알고 보니 덫으로 개조해 놓은 묘지마다 사람이 한 명씩 죽어서 발견됐대.
어떤 사람은 자기가 묘지에 설치한 드럼통에 실수로 빠져버렸는데 멧돼지가 잡식성이다 보니 그 사람도 잡아먹으려고 자기도 묘지 안으로 뛰어들어선 뜯어먹었다는 거야. 하체는 어디 가고 없고 벌써 상체만 남아 멧돼지에게 뜯기고 있었다고 해. 증조할머니는 직접 보셨다고;;; 또 어떤 사람은 묘지 안에서 아직 죽지 않ㅇ고 손 뻗어서 땅 짚고 올라오면 되는데, 나오지도 못하고 정신이 나가서 발발 떨고 있더라는 거야.
물어보니 간밤에 덫에서 끼에 끼에 하는 새끼 돼지 소리? 가 들려서 가보니 돼지는 없고 웬 시꺼멓고 동그란 게 파헤쳐 진 묘지 안에 있더래. 그래서 잔뜩 놀라가지고 호롱불을 비춰보니 여자인데 북한 장교 모를 쓰고 묘지를 맨손으로 파고 있었다는 거야. 그러다가 고개를 획 돌리더니 윗니 아래쪽은 포에 반파가 되었는지 너덜너덜하고 눈동자도 어딜 보는지 모르겠었대. 굉장히 높은 톤의 목소리로 자신이 누구를 찾고 있는데 도와달라고 그냥 가버리면 총 쏴 죽여버리겠다고 해서 나오지도 못하고 정신없이 땅을 파다가 보니 여자가 없어졌다는 거야. 손을 보니까 거짓 같지는 않았다더라.
어떤 미쳐버린 남자는 밤만 되면 묏자리 안에서 조용조용하게 사삭-사삭-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다고..호롱불을 비춰보면 소리를 낸 누군가 자신을 탁 치고는 도망가는데, 검은 사람 형체 같은 게 재빠르게 사라지고 그랬대..
날이 지나고 꼭 덫을 설치한 곳에는 멧돼지 대신에 사람이 죽어있었고 빈 묘지에는 누가 미쳐서 들어가 있고.. 이런 일이 계속 일어나니까 묘지가 자기 주인 찾는 것 같다고 귀신 들기 전에 제를 지내야 한대서 큰 굿판을 벌이고 패여진 묘지에서는 소나무 묘목들을 심고 금줄을 치고 향을 피웠다고 해. 그리고 나선 그 뒤론 별일 없었다고 하는데, 사실 증조할머님은 영을 보지만 사람들에겐 말을 잘 안 하는 편이래. 그 후로도 풀을 치러가면 솔잎이 불긋불긋하고 해가 쨍쨍한 대낮에도 그곳만 음산하고 검은 사람 형체 같은 것들이 군모를 쓰고 조용조용히 나무 뒤에 숨어서 풀치는 것을 지켜보았다고 해.
최근에는 그 생명력 강한 소나무들도 다 죽어서 전부 들어내고 잔디를 심어도 파릇파릇 해지지 않아서 방치 중이야. (지금도 문경시 점촌에는 시외버스터미널 바로 옆에 장례식장이 있고, 건너편에 문경 제일병원과 정신병원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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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1
asdfe3333님의 댓글
축하합니다. 첫댓글 포인트 10짬밥를 획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