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모과나무와 문둥병 귀신
asdfasf3333
2025-01-27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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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모과는 생으로 먹을 수 없는 과(果)실이야. 대신 약재로 쓰거나 잘만 쓰면 효용성이 무궁무진해. 입덧이나 설사, 감기에 아주 뛰어난 효능을 보였고, 특히 도드라지는 것은 통증을 완화시키는데 탁월하단 거지. 술을 부어 숙성시켜서 먹으면 몸에 열도 오르고 통증 완화 효과도 뛰어났어. 목에 좋아서 모과라고도 불렀고, 설화 중에 스님을 공격하던 뱀이 떨어진 모과에 죽었다고 '성호과'라고도 불렀다네. 울퉁불퉁 못생겨서 심성이 못난 사람을 모과 심성이라고 놀리기도 했대.
점촌 흥덕동에는 모과나무가 마당에 한 그루씩, 집집마다 많았다고 해. (지금도 모과나무 있는 집 몇 집 있더라.)
1930년대 입춘이 좀 지나 춘화가 활짝 필 무렵에 증조할머니의 친가가 상주 양진당 쪽에 있는 오천석꾼(썩 부유한 집안을 지칭함)이셨는데 그 집 못에서 수년간 키우던 잉어가 다 죽어버려서 흉험한 일이 생길까, 증조할머니를 불러서 제를 올렸다고 해. 못 물도 다 퍼내고 새로 갈아낸 후에 연꽃 하나 띄우고 새로 잉어를 풀었다고 해. 친가 쪽 집은 잘 살아서 사례로 쌀 한섬하고 가는 길에 2마리가 노새가 끄는 마차에 태워보냈다는데.(당시 교통수단은 대부분 말이었다고 해. 알아보니 목탄 자동차? 이런 것도 있는데 나무를 태워가는 자동차라... 신기하네)
돌아가는 길에 양진당 쪽 마부 어르신 한 분하고 말굽 갈이(말의 굽을 갈아주는 일을 하는 분) 청년 한 명과 증조할머니 이렇게 셋이 오게 됐어. 근데 그 말굽 갈이 청년이 가려움증이 심한지 오는 내내 자신의 배고 목이고 등이고 벅벅 긁어대더라네. 증조할머니께서 걱정이 돼서 마차를 세우고 길퉁이에 쑥이랑 개망초 풀을 따다 갈아선 발라줬다고 해. 그래도 차도가 좋지 못해서 결국 마차 안에서 쓰러져 버렸대. 증조할머니 댁에 도착과 동시에 되돌아가지 못하고, 치료를 받게 됐어. 집에 있던 증조할아버지와 마부가 쓰러진 말굽 갈이 청년을 들어다가 빈방 한편에 뉘었어.
날이 지나고 보니 긁은 곳은 살 안에서 구혈이나고 곪아버려 상처가 흉하고, 고통이 끔직한지 말굽 갈이 청년이 밤낮으로 잠을 못 자길래 증조할머니께선 모과로 술을 담가서 먹였어. 그러자 신기하게도 이내 편안해졌다고 해. 통증이 가라앉고 술 덕에 열이 올라오면, 냉수를 담아둔 장독대 뚜껑을 들어내 말굽 갈이 청년 배에 올리고 열을 식혔다고 해. 그러니 겨우 잠을 잤다고...
그렇게 나흘이 지나고 차도가 좀 나아지는가 싶었는데 오후만 지나면 또 가려워서 난리도 아니었어. 결국 담가둔 모과주를 두통이나 더 꺼내놓고 머리맡에 두니 아플 때마다 꺼내 먹고 겨우 잠을 청하고 했다고 해. 마부 어르신은 덩달아 며칠 묵다가 조상님 산소 이장문제 때문에 결국 노새 한 마리를 풀어두고 다른 한 마리를 끌고 되돌아가 버렸어.
증조할아버지는 흥덕장에서 소금장사를 하셨기에 일찍 나가셨고, 증조할머니는 별다른 일도 없고 말굽 갈이 청년이 동생 같아서 정성으로 돌봤다고 해. 증조할머니께서 보기에 청년이 몸이 약해지니 영기마저 약해져갔다고... 낮이면 호박 속을 풀어 치대고 귀한 갑오징어 뼛가루(문경은 남한의 거의 중심이라 삼면 어디든 바다가 멀어서 귀했음)랑 삼베에 넣고 짜서 나온 흰 진액을 상처 부위에 발라주고 밤에 자는데, 허해진 청년 보고 행여나 잡귀라도 붙을까, 복숭아나무를 태워낸 숯 가루를 빻은 쑥, 적상추와 함께 물에 풀어 말리고 뜸을 태워서 잠도 재우고 잡귀도 쫓았다고 해.
그렇게 일주일도 안 지나니 상처는 많이 아물고 몸도 꽤 회복됐어. 증조할머니께서 보시더니 "이제 괜찮아지신 것 같은데, 마부 어르신 걱정하실라 가봐야 되는 거 아닙니까." 했더니 아녀자 앞에서 웃통을 들춰서 아직 상한 부위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덜 나았습니다. 이거 보세요 쌀겨 같은 것들이 수두룩 빽빽이 있잖습니까." 하곤 아프다면서 모과주를 꺼내 마시고 빈둥빈둥 거렸어. 당시 증조할머니께선 젊은 처자였는데 낯 뜨거워하곤 알겠다고 했지.
하루는 증조할아버지가 일이 생겨 왜관으로 갈 일이 있었는데, 증조할머니께서 대신 장에 나가 소금 팔게 됐어. 곶감 아가씨가 소금을 판다고 소문이 나서 애기들이 와서 곶감도 얻어 가고 부모들이 와서 소금도 팔아주고 장사가 생각 외로 수월했다고 해.
해가 기울고 기분 좋게 댁으로 돌아오니 집 앞에 호롱불을 들고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여 있더라는 거야. "무슨 일입니까?" 하니 "아이고 왔네, 왔어."하고 그 무리 중 한 할머니 한 분이 핼쑥한 표정으로 증조할머니의 양팔을 다급하게 잡더라는 거야. 알고 보니 자기들은 건너 건너사는 가족인데 귀신이 손녀를 잡아갔다고 찾아달라고 하셨다더라. 처음엔 자신만 본 줄 알았는데 가족들이 하나같이 봤다는 거야. 아무리 잡귀로서니 사람을 잡아간 다는 것은 본 적도 없고, 들은 적도 없어서 '혹시 그 손녀가 기가 허해서 영이 들려서 나갔거나, 몽유병이거나, 아니면 자신처럼 신기가 있어서 신내림을 느낀 걸지도 모르겠다' 싶어서 그 사람들 집으로 가 봤다고 해.
웬 커다란 모과나무 한 그루가 마당에 있는 집이었대. 집안에 나쁜 영은 보이지 않고, 그 집안을 두루 돌아다니면서 어디가 영기가 강한가... 싶어서 둘러보니 희끄무레 잘 보이지도 않는 오래된 영들이 나무를 타고 놀고 있는데 해로운 영도 아니고 달콤 은은한 모과향을 맡고 모인 동자들이었다네. 증조할머니가 나무를 스윽 만지니 따듯한 것이 괜찮았다고, 심보가 못된 영이나 잡귀라면 시리도록 찬 것이 송연하다고 그러더라.
그 집 가족은 마을 사람들 대동해서 송진에 불을 태워 횃불을 들고 아이를 찾으러 나가고, 증조할머니는 이대로는 아무것도 안 되겠다 싶어서, 집으로 돌아와서 호롱불을 들고 아이를 찾는 걸 도우러 나가려는데, 말굽 갈이 청년의 신발에 웬 흙이 많이 묻어있더라는 거야. 그래서 청년방에 문을 열어보니, 청년은 웃통 벗고 자고 있는데 다 먹어가는 모과주가 한가득 채워져있고 방안은 술 냄새로 가득했다고 해.
그래서 말굽 갈이 청년을 깨워다가 흔들어 묻는데, 술에 진득하니 취해서는 정신이 있나. 대답도 못하고 헬렐레하고 있어서, 증조할머니가 느낌이 이상하여 따귀를 살짝 때리니 조금 정신이 들더래. 그래서 냉수 한 사발을 들고 와서 어디 다녀왔냐고 하니 기억이 없다고 하더래. 자신은 잠만 잤다면서, 요전에 매번 아플 때마다 모과주를 마시더니 하루에 깨어있는 시간보다 취해있는 시간이 많았던 탓인지 청년은 지금이 낮인지 밤인지도 모르고 정신도 못 차렸어. 그래서 옷을 입게 하고 세수를 하게 한 뒤, 청년도 같이 횃불을 들고 나섰어.
증조할머니께서 나간 사람들이 아이를 찾았는가 싶어서 청년과 함께 그 집으로 가 보니, 모과나무에 놀던 동자령들이 악귀 같은 표정을 짓고는 말굽 갈이 청년을 경계했다고 해. 증조할머니는 이상하게 여겨서 "당신 여기 온 적 있지요?"하니 청년이 화들짝 놀라면서도 "처음 와보는 곳입니다."하고 얼버무리더라네. 수상쩍은 증조할머니께서 지레 겁을 주려고 "지금 여기 모과나무에 사는 목신령이 당신을 등에 올라타 죽일 듯 목 조르는 시늉을 하고 있으니, 솔직하게 말하세요."라고 거짓말을 했대.
그러자 말굽 갈이 청년이 겁을 잔뜩 먹더라는 거야. 증조할머니께서 예사 보살이 아닌 걸 알고 있어서인지 더욱 그 말이 와닿았겠지. "실은 아가씨 댁에 모과주를 다 먹은 것이 죄송하여서 몰래 모과서리를 하러 왔었습니다"라고 했어. 아까 모과주가 다시 가득 차 있던 게 납득이 됐지. "그게 다예요?" 하고 물으니 고개만 끄덕끄덕하고 "등에 붙은 귀신 좀 때 주십쇼."하고는 서둘러 집을 나가려고 했대. 할머니는 대충 거짓으로 손을 휘저어 간이적으로 읍을 하는 척하고는 청년과 집을 나섰대.
밖에 나오니 마을 사람들이 애를 둘러업고 오는데 증조할머니께서 어디서 찾으셨냐고 물으니 "담벼락 뒤에 하천이 있는데 거기에 버려져 있더라."면서 업은 애를 보여주는데 호롱불로 살펴보니 머리에 돌 같은 걸로 찍었는지 움푹 패어 피를 흘리고 있었고, 옷은 어디 갔는지 애비가 웃통을 벗어 애기를 둘둘 감았어. 애가 간신히 정신이 들어서 말굽 갈이 청년을 보더니 기겁하면서 거품을 물더니 발발 떨면서 하는 말이... 증조할머니의 예상보다 충격적이었대.
그 여자아이는 열세 살 즈음 돼 보였는데 자신과 다섯 살배기 동생이 모과나무 밑에서 모과를 주우며 놀고 있었는데, 저 아저씨가 넘어왔다고 해. 상처가 곪은 곳이 아물어 흉측한 상처가 여기저기 나있는 사내가 담을 넘어 들어오니 얼마나 겁이 났겠어? 근데 술 냄새가 썩은 내처럼 진득하니 풍기고 기이하게 비틀비틀하니까 설화로 듣던 문둥병 귀신인가 싶어서 놀라서 소리를 빽-지르니 가족들이 나오는데 말굽 갈이 청년이 퍼뜩 놀라서 모과를 들어서 머리에 찍어버리고는 둘러업고 그대로 줄행랑을 친 거야.
문둥병 귀신이 애를 업어갔다면서 귀신이 손녀를 잡아갔다고 말이 나온 거지. 마을 사람들이 금세 뒤쫓아 나왔는데 가로등 없는 시절에 밤길도 어둡고 골목이 좁아 금세 놓치고 말았다고,
그 뒤로 기절해 있던 소녀가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보니 치마는 벗겨져 있고 아랫도리와 젖가슴은 시퍼렇게 멍이 들어서 아팠다고 해... 너무 겁이 나고 주위는 어둡고 무서워서 숨죽여있는데, 횃불 소리랑 자기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서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니 사람들이 찾아낸 거야.
그 얘길 듣고 사람들은 여자아이가 저 청년에게 강간을 당했다는 걸 알 수 있었어. 말굽 갈이 청년은 도망가려 했고 마을 사람들은 쫓아갔는데 말굽 갈이 청년이 성급히 도망가다가 그 집 모과나무 가지에 찔려버렸어. 목에 피분수가 이는 걸 부여잡고 나뒹굴었다고 해. 증조할머니께서 황급히 적삼을 찢어 목을 감고는 마을 사람들이 매질을 하려는 걸 말렸다고... 나무에는 동자령들이 나뭇가지를 부여잡고 킥킥거리고 웃는 것을 보았다고 하는데... 사람들에게 말하기엔 섬뜩한 얘기라 하진 못했다고...
날이 밝고 말굽 걸이 청년은 순사에게 잡혀갔고, 잡혀가면서도 "그년이 죽은 줄 알았는데 살아있었다니... 계집질할 때 시체랑 한 것은 아니었네" 하면서 포악한 내면을 드러냈다고 하네. 마을 사람들이 문둥병 귀신이 붙어서 저렇게 포악해지고 몸도 저리 변했다고 하더라. 증조할머니께서는 집안 손님이란 것을 사과하고 우리 집안 가족은 아니고 사람을 들여 일을 하던 청년이라고 설명해주고는 거듭 사과했다고 해.
점촌 흥덕동에는 모과나무가 마당에 한 그루씩, 집집마다 많았다고 해. (지금도 모과나무 있는 집 몇 집 있더라.)
1930년대 입춘이 좀 지나 춘화가 활짝 필 무렵에 증조할머니의 친가가 상주 양진당 쪽에 있는 오천석꾼(썩 부유한 집안을 지칭함)이셨는데 그 집 못에서 수년간 키우던 잉어가 다 죽어버려서 흉험한 일이 생길까, 증조할머니를 불러서 제를 올렸다고 해. 못 물도 다 퍼내고 새로 갈아낸 후에 연꽃 하나 띄우고 새로 잉어를 풀었다고 해. 친가 쪽 집은 잘 살아서 사례로 쌀 한섬하고 가는 길에 2마리가 노새가 끄는 마차에 태워보냈다는데.(당시 교통수단은 대부분 말이었다고 해. 알아보니 목탄 자동차? 이런 것도 있는데 나무를 태워가는 자동차라... 신기하네)
돌아가는 길에 양진당 쪽 마부 어르신 한 분하고 말굽 갈이(말의 굽을 갈아주는 일을 하는 분) 청년 한 명과 증조할머니 이렇게 셋이 오게 됐어. 근데 그 말굽 갈이 청년이 가려움증이 심한지 오는 내내 자신의 배고 목이고 등이고 벅벅 긁어대더라네. 증조할머니께서 걱정이 돼서 마차를 세우고 길퉁이에 쑥이랑 개망초 풀을 따다 갈아선 발라줬다고 해. 그래도 차도가 좋지 못해서 결국 마차 안에서 쓰러져 버렸대. 증조할머니 댁에 도착과 동시에 되돌아가지 못하고, 치료를 받게 됐어. 집에 있던 증조할아버지와 마부가 쓰러진 말굽 갈이 청년을 들어다가 빈방 한편에 뉘었어.
날이 지나고 보니 긁은 곳은 살 안에서 구혈이나고 곪아버려 상처가 흉하고, 고통이 끔직한지 말굽 갈이 청년이 밤낮으로 잠을 못 자길래 증조할머니께선 모과로 술을 담가서 먹였어. 그러자 신기하게도 이내 편안해졌다고 해. 통증이 가라앉고 술 덕에 열이 올라오면, 냉수를 담아둔 장독대 뚜껑을 들어내 말굽 갈이 청년 배에 올리고 열을 식혔다고 해. 그러니 겨우 잠을 잤다고...
그렇게 나흘이 지나고 차도가 좀 나아지는가 싶었는데 오후만 지나면 또 가려워서 난리도 아니었어. 결국 담가둔 모과주를 두통이나 더 꺼내놓고 머리맡에 두니 아플 때마다 꺼내 먹고 겨우 잠을 청하고 했다고 해. 마부 어르신은 덩달아 며칠 묵다가 조상님 산소 이장문제 때문에 결국 노새 한 마리를 풀어두고 다른 한 마리를 끌고 되돌아가 버렸어.
증조할아버지는 흥덕장에서 소금장사를 하셨기에 일찍 나가셨고, 증조할머니는 별다른 일도 없고 말굽 갈이 청년이 동생 같아서 정성으로 돌봤다고 해. 증조할머니께서 보기에 청년이 몸이 약해지니 영기마저 약해져갔다고... 낮이면 호박 속을 풀어 치대고 귀한 갑오징어 뼛가루(문경은 남한의 거의 중심이라 삼면 어디든 바다가 멀어서 귀했음)랑 삼베에 넣고 짜서 나온 흰 진액을 상처 부위에 발라주고 밤에 자는데, 허해진 청년 보고 행여나 잡귀라도 붙을까, 복숭아나무를 태워낸 숯 가루를 빻은 쑥, 적상추와 함께 물에 풀어 말리고 뜸을 태워서 잠도 재우고 잡귀도 쫓았다고 해.
그렇게 일주일도 안 지나니 상처는 많이 아물고 몸도 꽤 회복됐어. 증조할머니께서 보시더니 "이제 괜찮아지신 것 같은데, 마부 어르신 걱정하실라 가봐야 되는 거 아닙니까." 했더니 아녀자 앞에서 웃통을 들춰서 아직 상한 부위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덜 나았습니다. 이거 보세요 쌀겨 같은 것들이 수두룩 빽빽이 있잖습니까." 하곤 아프다면서 모과주를 꺼내 마시고 빈둥빈둥 거렸어. 당시 증조할머니께선 젊은 처자였는데 낯 뜨거워하곤 알겠다고 했지.
하루는 증조할아버지가 일이 생겨 왜관으로 갈 일이 있었는데, 증조할머니께서 대신 장에 나가 소금 팔게 됐어. 곶감 아가씨가 소금을 판다고 소문이 나서 애기들이 와서 곶감도 얻어 가고 부모들이 와서 소금도 팔아주고 장사가 생각 외로 수월했다고 해.
해가 기울고 기분 좋게 댁으로 돌아오니 집 앞에 호롱불을 들고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여 있더라는 거야. "무슨 일입니까?" 하니 "아이고 왔네, 왔어."하고 그 무리 중 한 할머니 한 분이 핼쑥한 표정으로 증조할머니의 양팔을 다급하게 잡더라는 거야. 알고 보니 자기들은 건너 건너사는 가족인데 귀신이 손녀를 잡아갔다고 찾아달라고 하셨다더라. 처음엔 자신만 본 줄 알았는데 가족들이 하나같이 봤다는 거야. 아무리 잡귀로서니 사람을 잡아간 다는 것은 본 적도 없고, 들은 적도 없어서 '혹시 그 손녀가 기가 허해서 영이 들려서 나갔거나, 몽유병이거나, 아니면 자신처럼 신기가 있어서 신내림을 느낀 걸지도 모르겠다' 싶어서 그 사람들 집으로 가 봤다고 해.
웬 커다란 모과나무 한 그루가 마당에 있는 집이었대. 집안에 나쁜 영은 보이지 않고, 그 집안을 두루 돌아다니면서 어디가 영기가 강한가... 싶어서 둘러보니 희끄무레 잘 보이지도 않는 오래된 영들이 나무를 타고 놀고 있는데 해로운 영도 아니고 달콤 은은한 모과향을 맡고 모인 동자들이었다네. 증조할머니가 나무를 스윽 만지니 따듯한 것이 괜찮았다고, 심보가 못된 영이나 잡귀라면 시리도록 찬 것이 송연하다고 그러더라.
그 집 가족은 마을 사람들 대동해서 송진에 불을 태워 횃불을 들고 아이를 찾으러 나가고, 증조할머니는 이대로는 아무것도 안 되겠다 싶어서, 집으로 돌아와서 호롱불을 들고 아이를 찾는 걸 도우러 나가려는데, 말굽 갈이 청년의 신발에 웬 흙이 많이 묻어있더라는 거야. 그래서 청년방에 문을 열어보니, 청년은 웃통 벗고 자고 있는데 다 먹어가는 모과주가 한가득 채워져있고 방안은 술 냄새로 가득했다고 해.
그래서 말굽 갈이 청년을 깨워다가 흔들어 묻는데, 술에 진득하니 취해서는 정신이 있나. 대답도 못하고 헬렐레하고 있어서, 증조할머니가 느낌이 이상하여 따귀를 살짝 때리니 조금 정신이 들더래. 그래서 냉수 한 사발을 들고 와서 어디 다녀왔냐고 하니 기억이 없다고 하더래. 자신은 잠만 잤다면서, 요전에 매번 아플 때마다 모과주를 마시더니 하루에 깨어있는 시간보다 취해있는 시간이 많았던 탓인지 청년은 지금이 낮인지 밤인지도 모르고 정신도 못 차렸어. 그래서 옷을 입게 하고 세수를 하게 한 뒤, 청년도 같이 횃불을 들고 나섰어.
증조할머니께서 나간 사람들이 아이를 찾았는가 싶어서 청년과 함께 그 집으로 가 보니, 모과나무에 놀던 동자령들이 악귀 같은 표정을 짓고는 말굽 갈이 청년을 경계했다고 해. 증조할머니는 이상하게 여겨서 "당신 여기 온 적 있지요?"하니 청년이 화들짝 놀라면서도 "처음 와보는 곳입니다."하고 얼버무리더라네. 수상쩍은 증조할머니께서 지레 겁을 주려고 "지금 여기 모과나무에 사는 목신령이 당신을 등에 올라타 죽일 듯 목 조르는 시늉을 하고 있으니, 솔직하게 말하세요."라고 거짓말을 했대.
그러자 말굽 갈이 청년이 겁을 잔뜩 먹더라는 거야. 증조할머니께서 예사 보살이 아닌 걸 알고 있어서인지 더욱 그 말이 와닿았겠지. "실은 아가씨 댁에 모과주를 다 먹은 것이 죄송하여서 몰래 모과서리를 하러 왔었습니다"라고 했어. 아까 모과주가 다시 가득 차 있던 게 납득이 됐지. "그게 다예요?" 하고 물으니 고개만 끄덕끄덕하고 "등에 붙은 귀신 좀 때 주십쇼."하고는 서둘러 집을 나가려고 했대. 할머니는 대충 거짓으로 손을 휘저어 간이적으로 읍을 하는 척하고는 청년과 집을 나섰대.
밖에 나오니 마을 사람들이 애를 둘러업고 오는데 증조할머니께서 어디서 찾으셨냐고 물으니 "담벼락 뒤에 하천이 있는데 거기에 버려져 있더라."면서 업은 애를 보여주는데 호롱불로 살펴보니 머리에 돌 같은 걸로 찍었는지 움푹 패어 피를 흘리고 있었고, 옷은 어디 갔는지 애비가 웃통을 벗어 애기를 둘둘 감았어. 애가 간신히 정신이 들어서 말굽 갈이 청년을 보더니 기겁하면서 거품을 물더니 발발 떨면서 하는 말이... 증조할머니의 예상보다 충격적이었대.
그 여자아이는 열세 살 즈음 돼 보였는데 자신과 다섯 살배기 동생이 모과나무 밑에서 모과를 주우며 놀고 있었는데, 저 아저씨가 넘어왔다고 해. 상처가 곪은 곳이 아물어 흉측한 상처가 여기저기 나있는 사내가 담을 넘어 들어오니 얼마나 겁이 났겠어? 근데 술 냄새가 썩은 내처럼 진득하니 풍기고 기이하게 비틀비틀하니까 설화로 듣던 문둥병 귀신인가 싶어서 놀라서 소리를 빽-지르니 가족들이 나오는데 말굽 갈이 청년이 퍼뜩 놀라서 모과를 들어서 머리에 찍어버리고는 둘러업고 그대로 줄행랑을 친 거야.
문둥병 귀신이 애를 업어갔다면서 귀신이 손녀를 잡아갔다고 말이 나온 거지. 마을 사람들이 금세 뒤쫓아 나왔는데 가로등 없는 시절에 밤길도 어둡고 골목이 좁아 금세 놓치고 말았다고,
그 뒤로 기절해 있던 소녀가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보니 치마는 벗겨져 있고 아랫도리와 젖가슴은 시퍼렇게 멍이 들어서 아팠다고 해... 너무 겁이 나고 주위는 어둡고 무서워서 숨죽여있는데, 횃불 소리랑 자기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서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니 사람들이 찾아낸 거야.
그 얘길 듣고 사람들은 여자아이가 저 청년에게 강간을 당했다는 걸 알 수 있었어. 말굽 갈이 청년은 도망가려 했고 마을 사람들은 쫓아갔는데 말굽 갈이 청년이 성급히 도망가다가 그 집 모과나무 가지에 찔려버렸어. 목에 피분수가 이는 걸 부여잡고 나뒹굴었다고 해. 증조할머니께서 황급히 적삼을 찢어 목을 감고는 마을 사람들이 매질을 하려는 걸 말렸다고... 나무에는 동자령들이 나뭇가지를 부여잡고 킥킥거리고 웃는 것을 보았다고 하는데... 사람들에게 말하기엔 섬뜩한 얘기라 하진 못했다고...
날이 밝고 말굽 걸이 청년은 순사에게 잡혀갔고, 잡혀가면서도 "그년이 죽은 줄 알았는데 살아있었다니... 계집질할 때 시체랑 한 것은 아니었네" 하면서 포악한 내면을 드러냈다고 하네. 마을 사람들이 문둥병 귀신이 붙어서 저렇게 포악해지고 몸도 저리 변했다고 하더라. 증조할머니께서는 집안 손님이란 것을 사과하고 우리 집안 가족은 아니고 사람을 들여 일을 하던 청년이라고 설명해주고는 거듭 사과했다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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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1
히데님의 댓글
축하합니다. 첫댓글 포인트 1짬밥를 획득하였습니다.